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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을 보다보면 한번씩 영화 <해바라기>의 대사가 나옵니다. <최강야구>에서는 슬럼프에 빠졌던 선수가 자기 폼을 되찾으면 동료선수들이 'O태식이 돌아왔구나'라고 말합니다. 이 때 O에는 해당 선수의 성을 붙이는데요. 김씨면 '김태식이', 이씨면 '이태식이' 라고 하죠.
또한 <해바라기>의 후반부 대사인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는 예능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입니다. 이렇게 단골 소재로 쓰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장면이 한 번 관람한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나온지 어느새 17년, 이 영화는 15세이상관람가 등급이기 때문에 영화가 개봉했던 2006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새 영화를 봐도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영화 <해바라기>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빛과 어둠으로 양분되는 세계
영화는 짧은 머리의 오태식(김래원 분)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딱봐도 풋풋하고 순박해보이는 태식은 호두과자를 먹고는 수첩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수첩에서 '호두과자 먹기'라고 적어놓은 위에 X표시를 합니다. 버킷리스트인 것이죠. 세상에나, 호두과자 먹기가 버킷리스트라니. 갓제대한 군인일까요? 어쨌거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관객들은 어렴풋이 태식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죠.
그런데 창무(한정수 분)와 양기(김정태 분)는 그렇지 않은 가봅니다. 태식이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아는 사람이라고는 창무와 양기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딱봐도 조폭 행동대장쯤 되는 창무는 태식의 눈치를 보기 바쁘고, 나이트클럽 사장인 양기도 태식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관객의 선입견과 극중 인물의 선입견이 충돌하는 순간입니다.
사실 태식은 살인자입니다. 술을 먹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마을을 주름잡던 조직 폭력배인 최도필이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죠. 그리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가석방 된 것입니다. 그리고 태식이 수감된 10년 동안, 사창가 포주였던 조판수(김병옥 분)가 어둠의 세계를 접수합니다. 그리고 10년 전 태식을 졸졸 따라다니던 양기와 창무는 현재 조판수의 밑에서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며 나름 거물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극중에서도 주인공 태식에 대한 인식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태식을 양아들로 삼은 덕자(김해숙 분)와 덕자의 딸인 희주(허이재 분), 태식이 취직한 웰빙 카센터의 사장님(이호성 분)은 태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관객이 처음 가진 인식처럼 착하고 순박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어둠의 세계에 속한 판수, 창무, 양기는 그렇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분명히 태식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태식을 바라봅니다.
제목이 <해바라기>인 이유
태식은 과거 어둠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밝은 세계로 나오려고 하죠. 자신을 믿어주는 덕자의 도움을 받아 밝은 세계를 바라보는 태식. 태식은 다짐 합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 어둠의 세계에서 항상 해왔던 술, 싸움, 후회를 멀리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해바라기는 태식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덕자가 만든 식당의 이름이 해바라기 식당인 이유도 비슷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식당 앞에 해바라기 밭이 있어서 해바라기 식당으로 지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덕자의 아들인 최도필 역시 정말 문제가 많은 아들이었으니까요. 덕자는 아들이 밝은 세계로 나오기를 누구보다 바랬을 것입니다. 아들은 끝내 어둠의 세계에서 죽게 되었지만, 어쩌면 태식이라면 밝은 세계로 나올 수 있다고 희망을 품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있은 후 마지막 시퀀스 직전, 태식은 다시 '울면서' '술'을 마십니다. '빛'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있었거든요. 앞서 했던 다짐을 깨고 어둠의 세계에 다시 들어가는 태식은 '싸움'을 통해 어둠의 세계를 정리합니다. 희주만을 안전하게 빛의 세계에 남겨두죠.
김래원, 김해숙 배우의 파워풀한 연기력
<해바라기>에는 어색한 연기가 조금 있습니다. 희주 역의 허이재 배우는 이 때까지만 해도 '연기톤'의 연기가 좀 있었습니다. 단역 경찰로 나오는 박성웅 배우조차도 이무렵의 연기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김래원 배우와 김해숙 배우의 연기는 아주 강력합니다. 두 사람의 이름 값을 한다고 해야할까요, 명불허전입니다. 영화의 플롯 구성이 단순한데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배우의 연기력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기쁘고, 희망하고, 억울하고, 분노하게 되실겁니다.
결론
영화 <해바라기>는 재미있습니다. 갈등구조와 플롯이 너무 단순하다고 평론하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영화를 꼭 공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봐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등장인물의 입장에 공감하고 몰입하면서,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걸작은 아니지만 관객 입장에서 너무 재미있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명작입니다.
예능에서만, 인터넷에서만 <해바라기>의 밈을 접한 세대에게는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우스운 영화가 아니거든요.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여운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오래되고 다시 찾는 시청자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OTT에서 시청 가능하십니다. 내친김에 오늘 한 번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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